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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Movie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1989) 후기, 스포주의!

by tkwk415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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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이미 명작이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영화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일부분만 짤로 많이보고 전에 봤는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여자친구가 다시 본다기에 나도 다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나는 이런 풍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감성적이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영화.

사실 볼때는 히어로물이 재밌긴하다~ 근데 히어로 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진 않는 편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암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영화는 한 남성이 자신이 다녔던 명문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이 되면서 시작된다.

그 선생님이 바로 로빈 윌리엄스, '키팅' 이다.

 

로빈 윌리엄스 '키팅'

그 키팅 선생님이 한 반을 가르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잔잔하게 풀어내는 내용이다.

물론 일어나는 소동들은 잔잔하진 않다.

 

키팅 선생님의 수업은 특이했다. 문학적 비평을 글로써 규정해놓은 교재를 찢고, 그러한 규정 혹은

법칙을 만든 이를 비판한다. 책에 의존한 그런 정보전달과 단순히 시험을 보기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펼칠 수 있는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키팅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이 영화의 제목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일종의 클럽? 동호회?

같은 것을 만들어 활동 했었던 것이 알려진다. 일종의 일탈을 했던 집단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만들라한적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선생님과 같은 낭만을 찾아서

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시낭송 동아리인 '죽은 시인의 사회' 를 다시 만든다.

 

재결성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

 

사실 '죽은 시인의 사회' 를 재결성하고, 일탈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원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아이' 에서

조금은 말썽꾸러기들이 되어간다. 단순히 부모의 주장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간다. 

 

찰리 달튼은 '누완다' 라는 자신의 인디언 이름을 만들고, 학내 신문기사에 몰래 '죽은 시인의 사회' 이름으로 학교에 반항하는 글을 투고해 논란을 일으킨다.

녹스 오버스트리트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던 크리스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한다. 

닐 페리는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던 연극을 계속해서 하고 주인공으로 공연도 하게 된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를 얻게 된 것은, 키팅 선생님의 수업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인가?

 

닐은 결국 그 연극을 했다는 것으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전학을 시킨다는 말을 듣자 결국 자신의 속에 있던 말

한마디 하지 못한채 자살을 택한다. 닐의 부모님은 책임을 키팅 선생님에게 돌리고, 교장 선생은 이전부터 수업 방식이 맘에들지 않던 키팅 선생님을 자르려고 했기에 이 사건을 구실로 자르려고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론이 모든 탓을 키팅 선생님께로 돌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 의 일원이었던 인원들 중 찰리 달튼을 제외하고는 강압적으로 카메론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서명을 한다. 끝까지 서명하지 않은 찰리 달튼은 퇴학 당한다.

 

사실 키팅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못된 모습을 보일때 그것마저 응원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줄 아는 그런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냥 단지 교장과 학부모들이 전통을 따르지 않는 키팅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명칭이 뭘 의미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미 죽은 시인들의 시를 낭독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지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낭만과 시가 없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지어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의 의미라 생각한다. 키팅 선생님의 수업은 어찌보면 낭만적이다. 결국 우리가 다 추구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것을 눈앞에 두고 나조차도 그런 수업을 하면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난다. 

 

이 영화는 1989년 작품이다. 거의 30년이 더 지난 작품인데, 당시에도 이런 생각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게 놀랍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지금의 교육시스템을 바라보면 어떨까?

로봇같다고 느낄 것 같다. 

 

이런 제목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카메론의 기회주의자적인 요소와 이기심은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집단 속에서 사실상 한명이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선 만연해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회의 모습이 이렇게 변하면서 결과적으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그래도 키팅 선생님같은 사람은 계속해서 생겨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어찌보면 성인이 된 나조차도

그의 삶에 대한, 낭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낭만이 없는 삶은 결국 파국이다.

무한 이기주의, 기회주의에 빠져 모든 사람이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만을 보고 살았다면, 이미 지구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미래에 살아갈 생명을 생각해 환경을 보전하자 말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물론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키팅 선생님 같은 이들이 모여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시인들을 다시 이 사회에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규정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제하거나, 통제하면 안된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단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전통과 형식을 그대로 따르게 되는 일종의 획일화는 좋지 않다.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디엠, Seize the day

 

위의 내용들은 모두 키팅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들이다.

이런 교육들의 결과를 영화 내내 잘난 형 때문에 기가 죽어있던 토드 앤더슨의 변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엔딩 장면

결국 토드 앤더슨은 마지막에 교장선생님이 눈앞에 있음에도 본인의 의사를 밝히며 책상위에 올라간다. 이에 하나 둘씩 따라하며, 그를 부른다. 

 

오 캡틴 마이 캡틴(O Captain! My Captain!)

 

그걸 본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는다.

 

모두들 고맙다. 고마워.
(Thank you boys.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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