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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Book

눈먼 자들의 도시 책 (: Blindness, 주제 사라미구) 독서 후기!

by tkwk415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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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이 책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워낙 유명하기에 다들 제목은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주제 사라미구는 이 작품으로 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고, 2008년 영화화까지 되었다.
이전에도 여러번 읽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결국 다 읽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길지 않은 500p 가량의 책인데, 왜이리 다 읽기 힘들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사실 이번에도 한번에 다 읽진 못했다. 소설임에도 단순히 읽기 어려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명확한 구분이 없다. 이 책에서 문장부호란 온점과 쉼표만 존재한다. 흔하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저자의 설명으로만 이 책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직접 이야기를 하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독자가 한다. 또한, 고유명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과 주변환경을 설명하는게 고유한 이름으로써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하는 어떠한 대명사로 인물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안과 의사', '안과 의사의 아내', '처음 눈이먼 남자' 등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독자에게 두 가지 효과를 주는 것 같았다.

첫째는 읽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특정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한 이름을 부여하는 이유는 서로서로 어떠한 것을 고유하게 부르면서 서로 의사소통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이름이 없다보니 헷갈림을 유발했다.
둘째로는 독자가 더 몰입할 수 있게 유도하는 듯 했다. 책 속의 공간, 인물은 전세계중 어딘가 일 것이지만 그 곳은 어디라고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예 우주나 다른 세상이 아니다. 분명 우리 주변 어디인가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본인의 국가, 본인 주위의 사람들을 대입하여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뭘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곳 도시 혹은 세상에 한여성을 제외하고 모든이가 눈이 멀게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스토리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스포주의!
처음엔 한 남성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갑자기 원인을 모르게 눈이 먼다. 그래서 도로한가운데에서 한 남성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가게 된다. 그 도움을 줬던 남자는 결국 눈이 먼 자에게 차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 후 부인과 함께 안과를 찾는다. 그러나 안과에서도 결국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 안과에 있던 사람들도 결국 다 눈이 멀게 된다. 여기서 정부는 접촉했기 때문에 실명이 전염병처럼 옮는 것이라 판단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모두 격리하기로 한다.

나는 여기서 첫번째 생각에 잠긴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실명이란 전염병과 코로나로 인한 세계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확진자에 대해서 동선을 파악하고, 격리를 진행한다. 그리고 접촉에 대한 전염으로서 파악했기 때문에 모두 한곳에 격리하고, 밀접 접촉자(보균자)에 대해서는 같은 공간이지만 떨어져있는 건물에 가둔다. 하필 그 건물도 정신병원,,,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건 군인이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을 통제해야하는 인원이라면 어떻게 해야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접촉이 전염의 원인이라면 격리시키는 1차원적인 해결방안을 제외하고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격리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인원들로 가득찬 병동안에서의 생활은 끔찍해져갔다. 음식은 군인들의 통제속에서 보급받고, 화장실과 같은 시설물은 제 역할을 못한다. 이 속에서 눈이 보이는 인원이 딱 한명 존재한다. 바로 '의사의 아내'이다. 어짜피 본인도 눈이 곧 멀것이라는 생각으로 남편과 함께 앞이 안보인다고 하여 함께 그 공간에 들어가지만 눈이 멀지 않는다. 그러나 눈이 보인다고 했을때 모든 일을 대신해줘야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기에 그것을 숨긴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점점 내부가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고통스러워하고 본인도 그냥 눈이 먼채로 아무생각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것 또한 직접눈으로 보게 되지만, 그걸 이해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조금은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남편과 한 여자는 욕구를 참지 못했고, 부인은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홀로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는 그 곳 내부의 사람들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동물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욕구를 참지 못한 것을 이해한 것이 아닐까? 과연 내가 그 상황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이곳에서 초기에 인원이 적었을때에는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를 통해 만들어진 일종의 규칙등을 통해 잘 살아간다. 그러나 수용된 인원이 많아지고, 다른 병동에 있던 인원들중 총을 들고있던 인원과 원래 눈이 멀어있던 인원이 손을 잡으면서 식량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독재체제를 만들어낸다. 이 상황들을 보면서 인류가 어떻게 정부를 만들어내고, 국가를 이루고 체제를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식량을 통제하면서 협박해 각 병동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그 대가로 식량을 조금씩 나눠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고 더러워서 읽기 힘들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부인을 내줘야하는 그런 상황... 자신이 안먹고 말겠다면 자신의 부인을 보내지 않고 싶겠지만 그 선택은 남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그렇게 하여서라도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면 선택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남편은 이미 아내에게 위의 욕구를 참지 못했던 똑같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총이라는 무기와 이미 눈이 먼 상태였던 사람의 경험, 이 두가지로 사람들을 협박하고 통제한다. 처음 눈이 멀어 낯선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에게 따른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반발하고, 반발할때마다 그 총을 이용한다. 하지만 총알은 제한되어 있고, 이 책에선 이렇게 말한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 이라고, 즉 그 총알이 모두 소진되었을때 그는 권위를 잃는다. 무력이란 그런 것인 것 같다. 또한 시간이지나 사람들이 눈이 먼 상태에 적응했을때 그 경험적 우위를 이겨낼 수 있다. 정의롭지 않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결국 심판 받는 것 같다.

결국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를 중심으로 병동의 사람들은 불량배들을 소탕하고, 병원을 탈출한다. 음식을 주고 내부를 통제하던 군인들은 본인들도 걸릴까두려워 가까이 오는 이들에게 총을 쏘고 더욱 통제를 강화하려했다. 그러나 그들이 불량배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가려했을때, 그들은 없었다. 아마 밖에 군인들도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끔직한 병동에서 탈출했을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고, 모든 이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정부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통제할 수 없는 '무(無)가 무를 통제하는 상황' 이라 묘사된다.

갈 곳 없던 이들은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를 통해 각자의 집을 가보기로 한다. 누군가는 가보지 않아도 된다고하고 누군가는 꼭 자신의 집에 가고싶다고 한다. 첫번째 집은 자신의 남편과 잠을 잔 여인의 집이다. 갔을때엔 이미 한 노파가 자기집처럼 사용한 상태로 더럽혀져 있었고, 집에 있기를 바랬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 여인은 자신은 홀로 남아 부모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엔 사람들과 함께한다. 보이지 않는, 낯선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것 같다. 그러한 무리가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면 이들처럼 함께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고, 올바르지 못한 지도자를 만나면 이전에 무너진 불량배조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첫번째 집을 지나 의사의 집에 가게되고, 눈이 보이는 아내는 홀로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온다.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쉬면서 함께 그 어찌보면 안전한 공간속에서 살아간다. 비가오자, 그 물로 지금까지 더러웠던 것들을 씻어내고 빨래를 한다. 그 비로 인해 난장판이던 도로에서도 깨끗한 부분들이 생겨난다. '이미 세상은 지저분해질 댈 지저분해지고 또 악취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니까. 우리가 깨끗해서 그게 더 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라고 말한다. 이 의미는 세상의 모든건 상대적이라는 것과, 더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세상이 더럽다고, 나까지 더러워질 필요는 없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아내는 남편과 함께 다시 그 슈퍼마켓의 지하창고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끔찍하게 죽은 시체들을 보게되고,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하고 슬픔에 빠진다. 자신이 그곳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창고의 많은 식량을 가지고 나오면서 사람들이 그 곳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식량들을 위해 그곳으로 가다가 계단에서 모두 넘어지면서 죽고만 것이다. 의사의 아내는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서, 자신이 그들을 죽였다고 자책한다. 자신이 챙긴 그 식량이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것을 알리지 않고 몰래 해서 불러온 일이라고,,,

'불행이 모두에게 닥쳐도, 늘 남들보다 더 심하게 그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같은 실명이라는 고통속에서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빠르게 적응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고통을 겪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눈이 멀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지 않게 그 상황을 맞이한다. 세상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힘든 일을 겪는다.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은 모두 상대적이다.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별로 아프고 싶지 않다. 그 아픔은 이 책의 실명처럼 의도하지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가온다. 모두에게 다르게,, 그러나 저 표현은 그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저 표현을 당연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그런 상황이 펼쳐졌을 때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게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하나 둘씩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다시 그 더럽혀진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예비 소대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군에 입대한 인원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태로 들어온다. 마치 이 책에서 눈이 먼 인원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다들 당연하게 하니까 그냥 열심히하라는 말보다, 현실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들이 다시 눈을 떴을때, 즉 다시 사회에 돌아가게 되었을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의사의 아내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이 해주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그 상황이 처음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신이 보인다고해서 모든 이의 일을 대신하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체계를 형성하고, 그들이 그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분명 이는 힘들 것이다.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옳지 못한 선택을 하여 그들이 힘든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하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 일 것이다. 이 책에서 '때로는 나도 눈이 멀었으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으면, 다른 사람들이 지고 있는 의무 이상을 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어요.' 라고 의사의 아내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게 주어진 책임이니까 그 책임이 끝날때까지는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 책의 후속편인 '눈뜬 자들의 도시'는 나에게 또 어떠한 충격을 줄지, 이 책을 영화화 한 작품에서는 어떻게 표현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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